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수에비 왕국 (문단 편집) === 건국 과정 === [[수에비족]]은 헤르문두리족, 차티족, 케루시족, [[마르코만니]]족, 콰디족 등을 포함한 [[게르만]] 연맹으로, [[율리우스 카이사르]]의 [[갈리아 전쟁]] 때 [[아리오비스투스]]의 지도하에 카이사르와 맞서 싸웠으나 [[보주 전투]]에서 패한 뒤 카이사르에게 갈리아의 패권을 넘겼다. 1세기 초반 마르코만니족의 지도자 마로보두스가 주변 부족들을 제압하거나 동맹으로 삼아 장차 왕국을 세울 계획을 세웠지만, [[토이토부르크 전투]]에서 로마 3개 군단을 궤멸시킨 체루스키족의 지도자 [[아르미니우스]]에게 패하고 로마로 망명하면서 세력이 꺾였다. 하지만 아르미니우스가 이어진 로마와의 전쟁에서 점차 밀리고 동족들 사이에서 인망을 잃어가다가 끝내 암살당하면서 체루스키족의 위세가 꺾였고, 마르코만니족은 이 틈에 세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. 그 후 로마와 한편으로는 충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교류하던 수에비 연맹은 2세기 중반 마르코만니족과 콰디족의 주도하에 로마 제국을 침략하여 [[오현제]]의 마지막 황제 [[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]]와 대결했다.([[마르코만니 전쟁]]) 3세기에는 수에비족의 일파가 [[알레만니]]라는 새로운 부족 동맹을 결성해 로마를 잇따라 침략해 막심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. 하지만 이들은 약탈을 벌이다가 본토로 귀환하길 반복할 뿐, 로마로부터 영토를 빼앗아 정착하지는 않았다. 그러던 406년 12월 31일, 라인 강 동쪽 기슭에 머물던 수에비족이 [[반달족]], [[알란]]족과 함께 라인 강을 건너 북부 갈리아를 휩쓸었다. 이들은 아마도 [[훈족]]과 훈족에 귀순한 [[동고트]]족 등 게르만 부족들에게 밀려났을 것으로 추정된다. 세 부족은 갈리아에 한동안 머물다가 409년 봄 게렌티우스 장군과 그가 옹립한 황제 [[히스파니아의 막시무스]]가 갈리아의 황제 [[콘스탄티누스 3세]]에 대항하여 [[히스파니아]]에서 반란을 일으키면서 정세가 혼란스럽자, 수에비족과 반달족, 알란족은 이 때를 틈타 히스파니아로 이주하기로 했다. 그들은 그해 9월~10월경에 피레네 산맥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에 진입했다. 이후 2년간의 약탈과 파괴로 풍요롭던 히스파니아가 황폐화되고 식인이 만연해지는 지경에 이르자, 세 부족은 영토를 분할하기로 했다. 411년 여전히 [[서로마 제국]]의 행정력이 미치던 카탈루냐를 제외한 이베리아는 북서쪽의 갈리시아에 자리잡은 수에비족, 북동쪽에 자리잡은 아스딩 반달족, 중앙에 자리잡은 실링기아 반달족과 알란족, 남부에 자리잡은 반달족으로 갈라졌다. 416~418년, [[서고트 왕국]]의 군주 [[왈리아]]는 [[콘스탄티우스 3세]]가 이끄는 로마군과 함께 베티카로 진군하여 실링기아 반달족을 물리친 뒤 그들의 왕 프레디발을 체포하여 [[호노리우스]] 황제에게 압송했으며, 뒤이어 [[알란]]족을 격파하고 그들의 왕 아다크를 주살했다. 이에 실링기아 반달족과 알란족은 [[반달 왕국]]의 [[군데리크]]에게 귀순했고, 로마는 작전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서고트족을 아키텐에 정착시켰다. 이러한 상황에 위협을 느낀 수에비족은 419년 [[헤르메리크]]를 지도자로 세웠다. 이리하여 수에비 왕국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